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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OGNE EXPERIENCE
 

28편 : 오스피스 드 뉘-쌩-조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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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부르고뉴 와인의 성지,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그 옛날, 와인 저장실로 쓰였던 중앙 홀에는 세계 각국의 와인 애호가들과 기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오스피스 드 뉘-쌩-조르주(Hospice de Nuits-Saint-Georges)의 41번째 와인 경매가 있는 날. 이 경매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본 딴 촛불 경매로도 유명하다. 뉘-쌩-조르주 프르미에 크뤼 “레 뮈르제르(Les Murgers)”라는 포도밭을 시작으로 중개인은 가격을 부르고 촛불을 켠다. 가격이 오를 때마다 촛불을 다시 켠다. 촛불이 켜져 있는 시간은 30초. 30초 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고 촛불이 사그라들면 가격은 낙찰된 것이다. 지난해에 수확한 포도가 막 발효를 끝내고 숙성이 시작될 즈음 이 도멘은 12여 헥타르 전 수확량을 이렇게 경매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익금의 일부는 자선사업단체에 기부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해의 포도주를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이날을 위해 땀 흘려온 이가 있다. 바로 도멘 오스피스 드 뉘-쌩-조르주의 레지세르(Résisseur), 장-마흐 모홍(Jean-Marc MORON)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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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경매가 열리고 한 달 후에 장-마흐 모홍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뉘-쌩-조르주로 향했다. 장-마흐 모홍씨가 몸담고 있는 도멘은 뉘-쌩-조르주 시립병원에 속해있는 도멘이다. 오스피스 드 뉘-쌩-조르주란 이름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뉘-쌩-조르주 병원이라는 뜻이다. 병원은 노환 전문병원으로서 부설 양로원과 함께 노인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시립 기관이다. 그러니까 이 도멘은 영리를 추구하는 보통의 양조장과는 다르다. 물론 이 도멘도 와인을 팔고 수익을 얻지만 이렇게 얻은 재정은 병원과 양로원의 운영을 위해 쓰인다. 장-마흐 모홍 씨는 시립병원 재정을 위해 운영되는 도멘의 책임자이다. 레지세르는 포도밭에서 한 병의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시 말해 포도 재배에서 양조, 숙성 그리고 병입까지 와인과 관련된 모든 일을 감독하는 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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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쌩-조르주 마을이 작아서인지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뾰족한 시계탑이 있는, 작은 성당 같은 벽돌 건물의 병원이었다. 병원 바로 옆에 커다란 곡식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 도멘이라고 한다. 잠시 후 40대 중반의 선한 얼굴을 한 장-마흐 모홍씨가 나왔다. 이곳에 일한 지는 12년 됐다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양조장으로 들어갔다. 뀌브(cuve)라 불리는 커다란 양조 통들이 나란히 양옆으로 서있는 양조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스피스 드 본(Hospice de Beaune)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오스피스 드 본은 오스피스 드 뉘 도멘 사업방식의 원조격이다. 병원의 수익사업을 위해 도멘을 운영한다던가, 경매를 통해 포도주를 판매하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수익금의 일부를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등. 매년 11월 셋째 주에 열리는 오스피스 드 본 경매의 기원은 중세 시대까지 올라간다. 1443년 니꼴라 홀랑(Nicolas Rolin) 부부는 병원을 건립하고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그 후 늘어나는 환자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 소유의 포도밭에서 생산한 와인을 경매에 부쳐 팔기 시작했다. 판매금의 일부는 불우한 이들을 위해 쓰였다. 소말리아 어린이를 돕는다든가, 카불에 병원을 건립하는 등이다. 오늘날 오스피스 드 본의 경매는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그 해 부르고뉴 와인시장의 흐름을 잡는다 할 만큼 그 위상은 높다.


 

 

 

이에 비하면 오스피스 드 뉘는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본 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그곳의 규모와 명성에 가려 불리한 점도 있겠다 싶은데 장-마흐 씨 말에 따르면 오히려 그 반대란다. 오스피스 드 본과 함께 오스피스 드 뉘는 네고시앙(와인 도매상)들이 수출을 위해 꼭 갖추어야 할 필수 명단 가운에 하나가 되었단다. 그 가운데 오스피스 드 뉘는 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거기에다 규모가 작은 만큼 적은 양으로 구입도 가능하다는 것이 네고시앙들의 흥미를 끄는 점이란다. 외국인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숙성과 병입을 뉘-쌩-조르주에 있는 네고시앙에게 맡겨야 한다. 지난해 오스피스 드 뉘 경매 입찰 명단에는 일본 수입상과 와인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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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흐 씨의 와인 철학]

양조장에서 나와 우리는 지하 까브로 내려갔다. 2001년도산 와인들이 오크통에 담겨 있었다. 바로 지난달 경매 때 팔렸던 와인들이다. “포도주와 떡갈나무, 각기 다른 개성의 행복한 동거”라고 어느 시구에서 표현한 것처럼 이제 와인들은 오크통 안에서 행복한 동거에 들어간 것이다. 이 도멘에서는 이미 60년대부터 모든 와인을 새 오크통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그때는 나무 향이 나는 와인이 아직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이전이었다.


 

 

 

장-마흐 씨는 와인을 제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 와인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포도밭별로 분리해서 발효시킨 후 오크통에 담아 숙성한다(부르고뉴 포도밭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각자의 고유한 이름이 있는데 떼루아에 따라 구획을 정해둔 것이다.). 이 도멘은 같은 뉘-쌩-조르주 프리미에 크뤼라 하더라도 16종류의 다른 포도밭을 두고 있다. 따라서 16종류의 다른 와인을 양조해서 파는 것이다. 포도밭과 밀레짐(Millésime; 포도 수확연도)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 요즘, 몇몇 양조자들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맛을 조작하려 합니다. 일시적으론 효과가 있겠지만 위험한 생각이죠. 저는 포도밭대로 밀레짐대로 그 맛을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기후가 안 좋아 다른 해보다 못한 와인이 나와도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인위적인 처리를 안 하는 편이죠. 만약 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떵피!(Tant pis! 할 수 없죠) 와인은 제가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포도밭과 자연이 만드는 거죠.”


 

 

 

언젠가 만났던 와인 전문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 세계적으로 몇몇 특정한 품종의 맛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샤르도네(Chardonnay)나 메를로(Merlot) 품종을 특히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와인 생산 국가들이 너도나도 인기 품종을 심고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포도밭 즉 토양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가령 메를로 품종 같은 경우는 어디에서나 쉽게 자랄 수 있는 품종이 아니다. 따라서 품종과 토양의 부조화는 언젠가 큰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장-마흐 씨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오스피스 드 뉘가 훌륭한 도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질문에 적합한 대답인가 싶어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안 됐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뜻일 거다. 20년 가까이 와인 만드는 일을 했다는데도 아직 그에게는 앞만 보이나 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포도주를 만들려고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견습생으로 죽을 것이다(On naît viticulteur et on meurt en tant qu'apprenti)’


 

 

 

[정직한 와인]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와인은 어떤 와인일까? 역시 그의 철학대로 좋은 와인을 선택하는 건 아뻴라씨옹(Appellation; 원산지)과 밀레짐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와인은 제가 기대한 대로 확답을 주는 와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아뻴라씨옹과 밀레짐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와인이죠. 보졸레(Beaujolais) 와인을 예로 들자면 이 와인은 갸메(Gamay)라는 품종과 화강암 토양의 특성상, 입안에 가득한 신선함과 과일 향이 특징이죠. 그런데 진한 오크 향을 낸다면 아무리 맛이 좋아도 제가 볼 땐 좋은 와인이 아닙니다. 밀레짐도 마찬가지죠. 92년도와 94년도는 9월에 비가 와서 그리 좋은 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런 해에는 약간 묽고 부드러운 와인이 나올수 밖에 없어요. 만약 진한 색깔과 타닌이 강한 와인이 나왔다면 이건 기후 조건상 불가능하죠. 다른 이들이 시음을 해보고 칭찬을 하더라도, 그 와인을 직접 만든 저로서는 좋은 와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와인은 등급이 있는 술이다(등급은 가격일 수도 있다.). 좋은 등급일수록 대부분은 맛도 좋고 향도 좋다. 등급이 내려갈수록 맛의 균형도 맞지 않고 향도 단순하며 복잡한 깊이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만이 내는 소박한 맛이 있다. 비록 그랑 크뤼, 프르미에 크뤼 와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출신지와 태어난 해를 충실하게 드러낸다면 좋은 와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마흐 씨는 요즘 소비자들이 어느 지역의 어떤 등급 즉 와인 에티켓만을 찾는 경향을 안타까워했다.


 

 

 

[꺄브, 2001년도 와인 시음]

장-마흐 씨는 기다란 스포이트처럼 생긴 유리관과 와인 잔을 가져왔다. 오크 통에서 직접 와인을 뽑아  우리가 시음할 수 있도록 잔에 따라주었다. 뉘-쌩-조르주 프르미에 크뤼. 붉은 과일 향이 진하게 풍겼지만 갓 빚어낸 와인이라서 아직은 거친 맛이 느껴졌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부르고뉴 와인답지 않게 타닌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강한 타닌 맛과 부르고뉴 특유의 부드러움이 잘 조화를 이뤘다. 다른 도멘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었다.


 

 

 

취재가 끝나고 나중에 안 사실은 뉘-쌩-조르주 포도밭은 부르고뉴 지역 가운데 가장 타닌 맛이 강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원하는 마시기 부드러운 와인을 만들다 보니 고유의 골격 있고 단단한 맛을 많이 잃어갔다고 한다. 그 가운데 도멘 오스피스 드 뉘는 뉘-쌩-조르주의 전통적인 맛을 보존하고 표현해내는 몇 안 되는 도멘으로 네고시앙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장-마흐 씨의 와인 철학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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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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