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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OGNE EXPERIENCE
 

21편 : 즈브레-샹베르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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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bourgogne-wines.com

 

 

 

나폴레옹의 연인, 즈브레-샹베르땅(Gevrey-Chambertin)


 

 

조선시대 유명한 명필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은 글씨를 쓸 때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붓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지필묵을 고르는데도 여간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신중을 기했는데, 그는 당대 최고의 것만을 사용해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추사의 이런 욕심은 까다로움이라기보다는 각 재료의 성격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그의 완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글씨를 쓰는 기술인 ‘필법’뿐만 아니라 매체의 조화 즉, 종이와 먹이 일치하는 조화로움의 경지에 이르는 ‘묵법’까지 섭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유작들이 오늘날까지도 바래지 않고 생생한 빛을 유지하는 것이다.


 

 

와인을 하나의 서예작품으로 비유하자면 필법은 양조기술과 와인 생산자의 노하우일 것이다. 그리고 묵법은 와인을 만들게 해준 자연적인 조건 이를테면 떼루아 같은 것이 아닐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가의 뛰어난 솜씨와 함께 훌륭한 재료가 필요하듯, 위대한 와인은 사람의 노력만큼 자연의 조건이 중요하다.


 

 

와인은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만큼 품질도 각양각색이다. 이 가운데 와인을 만들기에 가장 이상적인 자연조건을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즈브레-샹베르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떼루아를 가진 행운의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꼬뜨-도르(Côte-d’Or)는 부르고뉴 지방에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한 포도산지 가운데 하나다. 언덕을 중심으로 포도밭이 펼쳐진 이곳에서 즈브레-샹베르땅 마을은 북쪽에 자리해 있다. 꼬뜨-도르에서 즈브레-샹베르땅 마을은 가장 넓은 규모인 573헥타르의 포도밭 면적을 보인다. 처음 베네딕트 수도승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포도밭을 경작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때가 630년경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부터 이곳에 포도밭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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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nglish Heritage, The Wellington Collection, Apsley House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뛰어난 자연환경 덕에 즈브레-샹베르땅 와인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즈브레-샹베르땅의 애호가가 있는데 그는 바로 나폴레옹 1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샹베르땅 그랑 크뤼 와인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일례로 라스 까즈 백작(Emmanuel-Auguste-Dieudonné Las Cases)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나폴레옹 황제는 15년 동안 한결같이 한 와인만을 마셨는데, 그건 바로 샹베르땅 와인이다. 황제는 이 와인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황제가 건강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 와인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이 와인을 들고 다녔는데 독일, 스페인 심지어는 모스크바까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샹베르땅 와인이 함께 했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건 싸움 전날 저녁 식탁에 샹베르땅 와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그의 죽음을 재촉했던 것도 그가 좋아하는 샹베르땅 와인이 아니라 보르도 와인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즈브레-샹베르땅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곳 와인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바로 떼루아의 우월성이다. 즈브레-샹베르땅의 포도밭은 훌륭한 떼루아가 가진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햇볕이 잘 들고, 자연적인 배수가 잘 되며, 220에서 350미터의 이상적인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토양은 수억 년 전 바다 밑에서 형성된 석회질로 이뤄졌는데 지금도 포도밭에는 조개 화석들이 널려져 있다. 이들 모두가 명필가의 지필묵과 같은 그랑 방의 완벽한 조건들인 것이다. 그래서 즈브레-샹베르땅 은 꼬뜨 도르에서 특등급이라 할 수 있는 그랑 크뤼 포도원이 가장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그랑 크뤼 포도밭이 9곳 있으며 일등급인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도 25여 곳이나 된다. 그리고 마을 이름인 즈브레 샹베르땅을 사용하는 AOC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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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cristies.com

 

 


 

 

이곳의 모든 포도밭은 등급에 따라 위치에 따라 각기 조금씩 토질이 다르다. 그래서 떼루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석회질의 토양이라 하더라도 AOC 등급의 포도밭은 그랑 크뤼나 프르미에 크뤼의 포도밭보다 석회 성분이 약하거나 진흙 성분이 많거나 한다. 물론 이런 차이는 맛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마을 전체가 레드 와인만을 생산하는 즈브레-샹베르땅 와인의 특징은 강하면서도 섬세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색상이 진하고 자두와 체리 향이 나고 탄닌과 산도가 잘 어우러져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는 안정된 구조감을 보이는 와인이다. 하지만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맛의 차이가 난다.


 

 

쌩-자크(Saint-Jacques) 언덕 쪽의 와인들은 탄닌이 강하게 느껴지는 힘 있는 맛이 난다. 하지만 특등급 밭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아주 먼 옛날 화산이 폭발했던 흔적이 남아있는데 바로 화산 분화구의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화구와 가까울수록 와인의 맛도 강해지는 것이다.


 

 

조금 지루한 얘기였지만 교향곡을 연상하면 어렵지 않다. 같은 ‘피노 누아’의 선율을 연주하더라도 지휘자에 따라 조금씩 그 느낌은 다른 법이다. 그래서 음악가인 에른스트 아마데우스 호프만은(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샹베르땅은 내게 심포니(Symphony)와 아리아(Aria)를 선사해 주었다’고 말했다.


 

 

떼루아의 풍부함을 가장 잘 표현한 와인, 피노 누아 품종을 가장 다양하게 드러낸 와인, 즈브레-샹베르땅. 최근 들어 더욱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곳 생산자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조기술에도 노력을 기울여 떼루아에 의존하지 않고 품질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머지않아 즈브레-샹베르땅이 전 세계에서 부르고뉴 와인의 품질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대사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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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cristies.com

 

 


 

 

TIP

특등급 와인의 포도밭 이름

Appellation Grand Cru


> 샹베르땅(Chambertin) : 13.19 헥타르

> 샹베르땅-끌로 드 베즈(Chambertin-Clos de Bèze) : 14.53 헥타르

> 샤펠-샹베르땅(Chapelle-Chambertin) : 5.48 헥타르

> 샤름-샹베르땅(Charmes-Chambertin) : 27.54 헥타르

> 그리오뜨-샹베르땅(Griotte-Chambertin) : 2.64 헥타르

> 라트리시에르-샹베르땅(Latricières-Chambertin) : 6.80 헥타르

> 마지-샹베르땅(Mazis-Chambertin) : 8.65 헥타르

> 마조예르-샹베르땅(Mazoyères-Chambertin) : 3.02 헥타르

> 뤼쇼뜨-샹베르땅(Ruchottes-Chambertin) : 3.12 헥타르


 

 

일등급 와인의 포도밭 이름

Appellation Premier Cru


La bossière. La Romanée. Poissenot. Estournelles-Saint-Jacques. Clos des Varoilles. Lavaut Saint-Jacques. Les Cazetiers. Clos du Chapitre. Clos Saint-Jacques. Champeaux, Petits Cazetiers. Combe au Moine, Les Goulots. Aux Combottes. Bel Air. Cherbaude. Petite Chapelle. En Ergot. Clos Prieur. La Perrière. Au Closeau. Issarts. Les Corbeaux. Craipillot. Fonteny. Champonnet.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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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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