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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ra

쥐라는 프랑슈-꽁떼(Franche-Comté)라는 큰 지역 내에 속해있는 와인 생산 지역이다. 흐베르몽(Revermont)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와인 생산 지역은 살랑-레-뱅(Salins-les-Bains)에서부터 쌩-따무르(Saint-Amour)까지 80km로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고 동서로는 2-5km로 펼쳐져있는 좁고 긴 지역으로 아흐보아(Arbois), 폴리니(Poligny), 보아떠(Voiteur), 롱-르-소니에흐(Lons-le-Saunier) 마을들을 포함한다. 100여 개의 마을과 200개의 포도밭들이 쥐라 와인 생산 지역을 형성하며 서쪽으로는 브레스(Bresse) 열곡을, 동쪽으로는 쥐라 고원에 맞닥뜨리고 있다.

Jura

개괄

 

쥐라는 프랑슈-꽁떼(Franche-Comté)라는 큰 지역 내에 속해있는 와인 생산 지역이다. 흐베르몽(Revermont)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와인 생산 지역은 살랑-레-뱅(Salins-les-Bains)에서부터 쌩-따무르(Saint-Amour)까지 80km로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고 동서로는 2-5km로 펼쳐져있는 좁고 긴 지역으로 아흐보아(Arbois), 폴리니(Poligny), 보아떠(Voiteur), 롱-르-소니에흐(Lons-le-Saunier) 마을들을 포함한다. 100여 개의 마을과 200개의 포도밭들이 쥐라 와인 생산 지역을 형성하며 서쪽으로는 브레스(Bresse) 열곡을, 동쪽으로는 쥐라 고원에 맞닥뜨리고 있다.


쥐라 지역의 포도밭 면적은 오늘날 2,000헥타르 정도로 토양, 바람, 기후 그리고 생산 방식을 포함해 떼루아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8가지의 다른 스타일의 와인과 알코올 음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먼저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 뒤 쥐라(Crémant du Jura)”라는 아펠라씨옹으로 생산되며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화이트와 로제, 레드 와인이 생산된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쥐라 지역만의 와인들이 있는데 6년 이상 오크 통에서 숙성하며 황금색을 띠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방 존(Vin Jaune; 노란 와인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이 있으며 볏짚에서 건조시켜 당도를 응축해 만든 스위트 와인 “방 드 빠이(Vin de Paille; 짚 와인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와인이 있다. 여기에 더해 포도즙에 증류주를 첨가 해 만든 “막방 뒤 쥐라(Macvin du Jura)”, 그리고 와인을 양조하고 남은 껍질을 증류해 만든 증류주, “마흐 뒤 쥐라(Marc du Jura)” 2종의 알코올 음료도 찾아볼 수 있다.


위 쥐라 와인들을 만들 때 사용하는 품종은 5개가 주를 이룬다. 쥐라 지역 토착 품종 3종과 부르고뉴에서 온 2가지 품종이 있다. 토착 품종 중 화이트 품종은 “사바낭(Savagnin)”이라는 한 종류가 있고 레드 와인 품종은 “뿔사흐(Poulsard; 현지에서는 쁠루사흐(Plousard)라고도 부름.)”와 “트루쏘(Trousseau)” 2종이 있다. 또한 토착 품종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쥐라 지역에서 재배해온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이 있다. 이렇듯 쥐라 와인 생산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생산지역 중 하나이며 사용하는 품종의 다양성도 적은 편이지만 만들어내는 와인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독특한 특징을 가진 지역이다.

 

 

역사

 

쥐라 지역은 기원 후 80년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 (Pline le Jeune)”라는 인물이 처음 언급했다. 이는 10세기 아흐보아, 그리고 16세기에 샤또-샬롱(Château-Chalon)과 살랑-레-뱅이 역사 문서에서 언급된 것보다 한참 앞서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언제가 와인 역사의 시작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다수의 사료들을 살펴봤을 때 첫 시작은 고대에서부터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프랑슈-꽁떼 지역으로 묶이기 전에 플리니우스의 자연사 책에서 세퀴아니(Séquianie)와 그 와인이 언급된다. “[...] 포도로 복숭아 풍미의 와인을 만들 때 오스트리아의 빈 지역이나 세퀴아니 와인은 첨가물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풍성하다[...]”. 이 기록에서 나오는 와인을 와인 역사가들은 오늘날의 사바낭 품종에 대한 이야기라고 추측한다. 그 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1732년에 품질 향상을 위해 새로운 법령을 통해 재배가능한 품종의 수를 한정짓게 되었다. 1774년에는 총 14개의 재배 허용 품종들이 공포되었다. 이는 쥐라 와인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평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부터 19세기 말까지 쥐라 와인 생산지역은 꾸준히 성장해나갔다. 당시 일부 귀족과 성직자들이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품질이 뛰어난 밭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품질 발전을 주도해나갔다.


1902년, 아흐보아 와인 회사의 비서였던 알렉시스 아흐팡(Alexis Arpin)은 전국 포도 재배자 연합에 가입했다. 1906년 그는 아흐보아의 와인 재배자들에게 와인 원산지를 보증하는 인증을 발급하여 ‘아흐보아 와인’이라는 브랜드를 보호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해의 어느날, 19세기에 명성이 자자했던 꽁떼 치즈 장인 조합 형성을 계기로 프랑스의 첫 와인 조합이 아흐보아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1936년과 1937년에 쥐라는 아흐보아, 샤또-샬롱, 레또알(L’Étoile) 그리고 꼬뜨 뒤 쥐라(Côtes du Jura) 4개의 AOC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나 지역학, 지형학적으로 축복 받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전체 경작 가능 면적에서 포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8% 밖에 되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생산자들은 와인 양조 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지리적 한계는 베르노아(Vernois; 쥐라에 있는 마을이름)와 통합되었고 AOC 허용 포도 품종들을 다시 심었으며 품질 관리를 더 엄격하게 했으며 와인 양조를 위한 특별 대출이 가능해졌고 젊은 와인 메이커들을 위한 와인 양조 학위가 신설되었다. 오늘날 쥐라의 와인 산업은 특히 질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에 품질이 제각각이던 20,000헥타르 규모의 쥐라 와인 생산지역은 현재 2,000헥타르의 뛰어난 품질에 집중하고 있다.


필록세라가 쥐라를 덮친건 1879년과 1886년에 각각 보포흐(Beaufort) 마을과 아흐보아 마을이었으며 1895년까지 퍼져나갔다. 단 수 년 만에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은 절망에 빠졌고 황폐해져갔다. 이 때 쥐라 출신의 알렉시스 밀라흐데(Alexis Millardet, 1838 - 1902)가 미국 뿌리목과 접목을 실험했고 덕분에 전세계가 필록세라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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