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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OGNE EXPERIENCE
 

30편 : 부조, 도멘 드 라 부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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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멘 드 라 부즈레

 

 

 

포도 재배자를 찾아서: 부조(VOUGEOT)


 

 

모든 와인은 각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 포도밭의 작은 알맹이에서 한병의 포도주가 되기까지 길고 긴 여정을 거쳐온 와인은 자신의 색깔과 향 그리고 맛을 통해서 자신의 역사를 드러낸다. 이 섬세한 와인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사공들이 있다. 포도 재배자, 양조자, 카비스트, 소믈리에… 그중 유기농법으로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한 포도 재배자를 만났다.


 

 

유기농에 대한 인식은 90년대부터 팽배했다. 와인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주지 않고 보다 자연에 가깝게 농사지으려는 포도 재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유기농 농부로의 변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화학비료에 길들어 있는 포도밭이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도멘 드 라 부즈레(Domaine de la Vougeraie)의 포도 재배 책임자로 일하고 있던 베르나르(Bernard Zito) 씨를 만나러 간다(현재는 본인의 이름을 딴 베르나르 지또(Bernard Zito)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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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지또(Bernard Zito)

 

 

부조(VOUGEOT)로 가는 길

베르나르 씨의 작업장이 있는 부조 마을로 가기 위해 본(Beaune) 방향의 74번 국도를 달렸다. 황금의 언덕이라는 꼬뜨-도르(Côte-d’Or) 지역을 가로지르는 이 도로에는 막사네(Marsannay) 마을을 시작으로 부조(Vougeot), 즈브레-샹베르땅(Gevrey-Chambertin) 본-로마네(Vosne-Romanée) 등 부르고뉴의 유명한 포도밭들이 자리해 있다. 아직은 잎이 나기에 이른 계절이라서 작고 단단한 밑동만 남아있는 포도밭, 그 사이에는 가지치기한 잔가지들을 한데 모아서 태우느라 하얀 연기가 오르고 있다. 작은 간이역을 지나자 바로 부즈레 도멘의 창고가 보였다. 큰 키에 건장한 몸, 민첩한 몸가짐에 작업복 차림의 베르나르 씨,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 기행의 첫 만남, 처음 만난 그의 인상은 이랬다. 베르나르 씨는 포도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포도 수확까지 재배에 관한 모든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큰 도멘이나 샤또 같은 포도원들은 포도 재배, 양조 그리고 판매 이렇게 각 영역의 책임자를 두고 있다.  이들의 권한과 역할은 소유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직업 그 이상의 어떤 열정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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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이 필요 없었다.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베르나르 씨는 우리를 포도밭으로 안내하겠다고 차에 올랐다. 말도 제대로 못 건네보고 얼떨결에 따라간 곳은 끌로 드 부조 바로 옆에 자리한 끌로 블랑 드 부조(Clos Blanc de Vougeot) 포도밭이다. 이곳은 모노폴(Monopoles) 포도밭이라고 한다. 로마네-꽁띠(Romanée-Conti) 끌로 드 타(Clos de Tart)를 비롯해서 몇 안 되는 모노폴 밭이다. 모노폴이라는 것은 이 포도원의 소유자가 여럿으로 나눠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끌로 블랑 드 부조라는 포도밭은 이 부즈레 도멘이 유일한 소유자이며 해당 이름의 와인은 한 명의 생산자만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처음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밭들을 방문할 때였다. 모노폴이란 단어가 선뜻 이해가 안 됐었다. 내 포도밭인데, 나 말고 다른 주인이 없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모노폴 아닌 다른 모든 포도밭들도 그렇지 않은가 등등.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와인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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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이후 정부는 귀족과 교회에 속하던 재산을 몰수했다. 이렇게 몰수한 재산은 이후 경매를 거쳐 다시 팔아야 했다. 물론 이 가운데는 포도밭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와인 역사는 이 사건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먼저 부르고뉴 대부분 포도원들의 소유는 교회, 수도원의 것이었다. 혁명이 일어나자 수도사들은 외국으로 쫓겨났다. 몰수한 포도원은 파리 부르주아들과 그곳 주민들(포도밭의 20%가량)이 경매를 통해 매입하였다. 이후 자식들에게 상속되면서 더욱 쪼개져 오늘날의 모자이크판 같은 부르고뉴 포도밭이 만들어졌다. 반면 보르도에서는 그랑 부르주아들이 포도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이 일어나자 이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도 돈을 써서 다른 사람을 통해 몰수된 자신의 포도밭을 회수하여 현재까지도 대규모의 포도원을 그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모노폴은 바로 혁명 이전 수도사들의 소유였던 포도원이 아직까지 쪼개지지 않고 한 도멘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모노폴 밭의 끌로 블랑 드 부조 밭과는 달리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밭은 80여 명으로 포도원의 소유가 나눠졌다. 끌로 블랑 드 부조는 한 명의 생산자가 생산하기 때문에 하나의 맛을 보이지만 끌로 드 부조는 80여 개의 생산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양조를 하여 ‘완전한’ 떼루아의 반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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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농법

포도밭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놓은 기다란 돌담에 기대어, 앞으로는 포도밭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부탁했다. 베르나르 씨는 성큼성큼 포도밭 쪽으로 걸어가더니 얕은 둔덕을 사뿐히 넘는다. 그리고 포도밭 줄 가운데 허리를 굽히고 서서 손끝으로 가지를 잡고는, 이렇게 하면 될까요 하고 묻는다. 누군가는 와인을 만드는 건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땅의 예술가라 할 수 있는 베르나르 씨, 그가 이곳 도멘에서 일한 지는 12년, 포도재배자로서 일한 지는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포도재배자라는 직업에 만족하는가 물어보았더니 그는 아주 만족한단다.


 

 

"훌륭한 와인의 첫 번째 조건은 농도가 높은 포도송이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농축미있는 와인이 나오는 거죠. 농도 높은 포도송이는 결국 포도 재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래서 와인 만드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질의 포도송이와 훌륭한 양조기술로 만든 와인은 물론 그랑 방(Grand Vin; 훌륭한 와인)이 나온다. 좋은 질의 포도송이를 적당히 양조해도 그랑 방이 나온다. 그러나 질 낮은 포도로는 아무리 훌륭한 양조기술을 써도 그랑 방을 만들기 어렵다고요. 그만큼 포도 재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다면 질 좋은 포도는 어떻게 얻어지나 궁금해졌다. 베르나르 씨 말에 따르면 먼저 좋은 떼루아와 좋은 묘목을 선별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즈레 도멘은 여기에 더해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밭을 경작한다고 했다. 자연에 가장 가깝게 땅을 일구는 것이다.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기계와 트랙터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퇴비와 거름을 묵혔다가 사용하며, 가지치기, 포도 수확 등 모든 밭 작업은 사람 손으로 처리한다. 말하자면 죽었던 땅을 다시 살려내고 보존하자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독특한 향취가 몸에 벤다. 버섯 향이나 진한 훈제 향 등이 강하게 나는데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아있는 유기농 땅에서 나는 흙냄새인 것이다.


 

 

토양 안에 미생물이 살아있다는 건 포도나무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다 보면, 땅속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생기게 된다. 이 구멍들 사이로 물도 쉽게 내려갈 뿐 아니라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 깊이 뿌리내린 포도나무는 영양가 있는 미네랄 성분을 맘껏 흡수할 뿐만 아니라 비, 바람, 가뭄 등 외부 변화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튼튼한 나무가 된다.


 

 

유기농 방식의 포도 재배는 비용도 많이 들거니와 오랜 세월이 걸리는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부즈레 도맨 또한 오래전부터 서서히 유기농 방식을 시작해서 현재는 도멘의 모든 포도밭 30헥타르 면적을 유기농 방식으로 경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말을 사용해서 밭을 가는데 트랙터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트랙터가 땅을 누르고 지나가면 그 안에 살던 미생물들이 죽게 된다. 또 비라도 오게 되면 배수가 잘되지 않아서 흙과 함께 미생물 성분들이 쓸려 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말은 땅을 누르지 않기 때문에 미생물들이 살아있고 침식작용도 막을 수 있어서 뿌리가 땅속 깊은 곳까지 뻗어 갈 수 있다.


 

 

"유기농 방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와인의 맛이 좋아지거나 달라지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눈앞의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모든 조건을 최상에 두어야 합니다. 포도 재배를 위해서는 바이오 방식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먼 미래를 두고 선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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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술

카페 안에는 평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포도밭에서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바람이 심하게 불자 다시 차를 몰고 인근 마을의 카페로 들어왔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켜 마시면서 베르나르 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와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뱅 드 갸르드(Vin de garde; 와인의 구성 성분, 타닌, 산성, 당분 등이 조화롭게 섞여서 오랫동안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라는 표현을 썼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익어가는 동안 맛이 깊어지는 와인, 20년이 지나도 신선한 과일 맛이 살아있고 농축미가 남아있는 와인, 그는 이런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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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부르고뉴 와인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부르고뉴 지역에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질문하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떼 다음과 같이 답변해 주었다. "우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아뺄라시옹 레지오날 와인을(지역 이름인 부르고뉴(BOURGOGNE)만 적혀있는 AOC 와인) 맞보세요. 가장 높은 등급인 그랑 크뤼 와인에서부터 가장 낮은 레지오날 와인까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재배합니다. 포도 묘목도 같고요. 다만 떼루아가 다르고 그랑 크뤼 와인은 수확량을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피노 누아라는 품종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점점 질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사실 좋은 와인을 마시려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죠. 그다음에는 부르고뉴 각 마을의 다양한 맛을 비교해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아보세요.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한데요. 이 차이들을 이해하게 되면 당신의 와인 세계는 말할 수 없이 풍부해질 것입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문득 와인을 만드는 건 왜 예술작품과 같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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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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