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SEARCH

BOURGOGNE EXPERIENCE
 

29편 : 끌로 드 따흐(Clos de 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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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 드 따흐 정문(credit : Jeff Kwak)

 





와인 여행을 떠나자 : 끌로 드 따흐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추워졌다. 9월 개강 이후 수업 분위기가 안정을 찾아갈 무렵이면 학생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바로 와이너리 견학과 와인 시음 때문이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찾아 산으로 향하듯 발효된 포도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의 흥미를 끈다. 혼자서, 그룹별로 또는 학사일정에 배정된 단체수업 등 형태도 다양하지만 행선지 또한 가까운 부르고뉴에서부터 프랑스 전국 각지의 포도원까지 폭이 넓다. 이런 여행은 교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백문이 불여일견. 와인 산지를 직접 답사하고 경험하는 것은 와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재현해준다. 언덕을 따라 가지런히 정돈된 포도나무들, 도시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살아있는 흙냄새,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느껴지는 지하 저장고 까브… 한결같이 친절한 와인 메이커들, 자신이 빚어낸 와인에 대한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듣다 보면 어느새 와인을 사랑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열정을 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책으로만 보던 이론들을 직접 보고 듣게 되니까 훨씬 이해가 빠르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은 역시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체험하는 방법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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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 드 따흐 시음(credit : Jeff Kwak)

 



언젠가 여기서 살아보리라

프랑스의 포도산지는 넓다. 북쪽의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자스(Alsace)부터 남쪽의 프로방스(Provence)까지 햇볕이 잘 드는 산자락이면 어김없이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면적만도 79만 ha가 넘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나라다(OIV, 2019 STATISTICAL REPORT ON WORLD VITIVINICULTURE).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치가 아름답다. 특히 포도밭은 언제나 아름답다. 옅은 초록색이 짙은 초록색으로 다시 노랗고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로 넘어가는 포도나무는 정말 아름답다. 심지어 열매와 가지가 다 떨어져 나간 포도나무 그루터기 그리고 가지치기한 가지들을 태우는 푸른 연기로 가득한 황량한 겨울 들판까지도 사랑스럽다.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초겨울. 우리 반 학생들과 교수님들은 인근 꼬뜨 도르(Côte d’Or) 지역의 한 도멘을 방문하기 위해 출발했다. 완만한 녹색 언덕이 계속 이어지고 그 경사면에는 포도밭이 보인다. 구불구불 아름다운 길을 따라 마을과 포도밭이 번갈아 이어지는 정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처음 포도산지와 인근 마을을 돌아보았을 때 그 아름다운 경치와 깨끗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여기서 꼭 살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는 곳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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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 드 따흐(credit : Jeff Kwak)

 



유서 깊은 포도원, 끌로 드 따흐(Clos de Tart)

우리가 도착한 곳은 모레-쌩-드니(Morey-Saint-Denis) 마을의 북쪽에 자리한 끌로 드 따흐 포도원이다. 하얀 자갈이 깔린 정원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우리를 반겼다. 이곳 포도원을 책임지고 있는 실반 피띠오(Sylvain Pitiot)다. 큰 키에 마른 체구였고 크고 선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곧바로 그는 우리를 포도밭으로 안내했다. 이곳 주변 마을은 모두 포도에만 일편단심으로 전념하는 마을이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이곳 끌로 드 따흐는 예전에는 베네딕트 수도원 수녀들의 소유지로서 1141년에 지어진 역사 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피띠오는 포도원의 역사를 풀어놓자마자 포도밭의 지형과 지질을 설명했다. 유학 초기에는 포도원을 방문했을 때 이런저런 설명이 따라붙으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공짜 술 얻어먹으러 온 사람처럼(사실 그렇기도 했다) 설명할 때에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있다가 시음하는 시간만 되면 눈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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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 드 따흐 지하 창고(credit : Jeff Kwak)

 



비밀스러운 와인 맛의 세계

그런데 와인을 공부하다 보면 이 시간만큼 중요한 시간이 없다. 책에서는 접할 수도 없는 살아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예로 들더라도 그리 넓지 않은 포도밭이지만 위치에 따라 지질이 둘로 나뉘었다. 같은 석회질 토양이었지만 이회암 성분이 포함되었는지 아닌지에 지질이 달라 보였다. 물론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더욱 확연하게 구분이 갔던 건 시음을 통해서였다.


 

 

실내로 들어서서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지하 꺄브로 내려갔다. 시원한 돌로 벽을 두르고 바닥에는 자갈이 깔려있었다. 와인을 담은 오크통들이 보기 좋게 줄지어 놓여 있었다. 피띠오는 병에 담기 전까지는 포도밭 지질 별로 따로 와인을 빚어 담가 둔다고 했다. 각각 맛을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바로 옆의 포도밭에서 딴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도 역시 맛이 달랐다. 한 쪽은 탄닌과 산도가 강하지 않아서 우아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고, 다른 한쪽은 반대로 탄닌과 산도가 강한 맛의, 구조감있는 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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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 드 따흐(credit : Jeff Kwak)

 



비뉴롱(Vigneron)

우리가 와인 산지 방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그들의 장인 기질이다. 프랑스에 살다 보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전문인으로서 인정받게끔 성실하고 빈틈없이 일하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된다. 예컨대 정육점 주인들은 단순히 고기를 파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도, 고기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고 어떻게 식탁에 올려야 하는지 그리고 곁들여서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해 준다. 그래서 특정한 전문직 아니고서는 모두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들은 부셰리(Boucherie)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와인도 예외는 아니다. 와인 메이커는 불어로 비뉴롱이라 불린다. 내가 만난 비뉴롱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앙리 자이에(Henri jayer)다. 그는 조그만 단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고 양조장은 집 뒤편에 자리한 조그만 사무실과 창고가 전부였다. 그 흔한 입간판 하나 없고 포도재배자 앙리 자에에라고 새겨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작은 명패가 전부여서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이런 사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 경매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메이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규모인 7ha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더 늘릴 생각도 없거니와 지금은 그것마저도 조카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간 그날 아침에도 트랙터로 타고 들어온 걸 보면 땅에서 떠날 수 없는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하나를 벌면 둘로 확장해서 셋을 벌고 싶어 하는 우리 사회와는 분명 다른 근성이 있었다.


 

 

이렇게 와인 여행길에는 어리석을 정도로 외길 인생을 걷는 장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숙연해진다. 그리고 와인을 공부한다는 것이 단순한 술 공부가 아님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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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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