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SEARCH

BOURGOGNE EXPERIENCE
 

5편 : 앙리 자이에, 전설을 만나다.

최신덕 149.jpg

 [앙리 자이에 (credit: Vinocus)]

 

와인 메이커의 교황(Le Pape des Vignerons), 부르고뉴 와인의 살아있는 전설, 상징, 대부 등등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간간이 그가 병이 깊어간다는 소식을 부르고뉴의 한 지인으로부터 듣곤 했었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한 매체를 통해 그의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와 만났던 깊은 감동의 추억을 잠시 회상했던 기억이 있다. 

 

부르고뉴는 소위 앙리 자이에를 추종하는 계보가 따로 있다. 드니 모떼(Denis-Motet), 메오 까뮈제(Meo-Camuzet), 안 그로(Anne Gros), 브루노 끌레르(Bruno Claire), 필립 샤를로팡(Philippe Charlopin) 등이 앙리 자이에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대표 도멘들이며, 그중에 상속자인 그의 조카 엠마뉘엘 후제(Emmanuel Rouget)와 장 니꼴라 메오(Jean Nicolas Meo)가 앙리 자이에의 제자로 전반적인 양조 기법을 전수받은 제자들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천재적인 양조기술에 매료되기도 하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박하고 겸손하며, 인간적인 너그러움과 그의 삶의 지혜에 더욱 매료된다고 한다. 

 

 

[우연한 만남]

부르고뉴 와인의 신이라 불리는 그를 만나게 된 것 자체가 나에겐 더 없는 행운이었다. 이런 전설적인 인물은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지레 짐작하고 그의 스타일을 따라 만든 앞서 언급한 도멘 하나하나 방문하여 와인 테이스팅을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고 있었다. 

 

부르고뉴 대학에서의 수업을 모두 마친 어느 날 학위 수여식 때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앙리 자이에가 내 눈앞에 나타나 자신의 와인을 직접 서빙해 주는 게 아닌가!! 물론 많은 인파 속에 그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만한 용기는 없었다. 간단히 나 자신을 소개하는 정도로 첫 만남을 마무리했지만 다행히 전화번호를 선물로 받았고 도멘에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방문 당일, 일찌감치 그의 도멘이 위치한 본-로마네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지난번 로마네-꽁띠를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왕래 했던 익숙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도멘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아주 낡은 구형의 벤츠 한 대가 우리가 헤매고 있는 한 가정집 앞에 주차를 했고 곧 앙리 자이에가 차에서 내려 우리를 반겨 주었다. 도저히 도멘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아주 평범한 가정집이 로마네-꽁띠와 샤또 페트뤼스와 같은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곳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앙리 자이에는 1995년에 은퇴한 후 한참이 되었지만 아직도 간간이 포도밭에 나가 일을 한다는 말과 함께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된다. 이미 그때도 우리의 기억에 많이 연로하셨던 것 같았지만 피곤해 하거나 귀찮아하는 내색 없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철학과 와인에 대해 너무나도 미안할 정도로 잘 설명해 줬던 기억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해 전에 한 일본 남성이 불쑥 찾아왔다고 한다. 아무런 연락 없이.. 그냥 돌려보내기도 뭐 하고.. 일본 남성은 동경에서 일부러 앙리 자이에를 만나러 온 팬(?)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면서 와인 한 병을 선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이 만들었던 1971년 빈티지의 리쉬부르(Richebourg) 그랑 크뤼 와인이었으며, 라벨에는 분명히 H.J 란 사인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와인은 일본에 수출된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고 한다. 일본인은 해외 옥션에서 아주 비싼 가격으로 구매했으며 죽기 전에 꼭 그 와인을 자이에와 함께 마시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생면부지의 일본인과 함께 그 와인을 마시면서 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며 한때를 회상했다. 이 짤막한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는 앙리 자이에가 와인을 잘 만들어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지닌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최신덕 004.jpg

 ​[앙리 자이에와 백은주 교수(credit: Vinocus)]

 


[앙리 자이에의 양조 철학]


« C’est d’abord a la vigne que se font les bons vins. Le bon vinificateur est d’abord un bon vigneron. »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그 이전에 우선 좋은 포도가 있어야 한다. 또한 훌륭한 양조자 이전에 우선 훌륭한 포도재배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나 원론적인 말 아닌가! 뭔가를 특별한 것을 기대했건만. 모두가 다 아는 원칙이지만 이 기본적인 것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며 얼마나 그가 이 원칙을 잘 지키고 실행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단순하면서 변치 않는 그의 고집이다. 적용되는 원칙은 복잡해서는 안 되며 최대한 사람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 와인 스스로 떼루아를 표출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적은 면적의 포도원에서 가혹할 만큼 적은 양만을 수확하고 포도 선별 시 최고 15-20% 정도 품질 미달 포도를 거르는 가혹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이후 저온 침용 과정을 거치고 숙성에 100% 새 오크 통을 사용하며 여과와 필터링 작업을 거치지 않고 아주 적은 양의 와인만을 생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앙리 자이에의 와인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굉장히 많다. 가격이 높은 편이긴 하나 사실 품질과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구하기 어려운 와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와인을 어떻게 상품화 시킬까?]

그는 오래 거래해온 파트너와의 신용관계로 일을 한다고 한다. 돈이 많다고 그의 와인을 살 수 없고 우선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야 한다. 그 후 와인을 받는 시기는 1년 뒤가 될 수도 있고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앞에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대거 죽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흔히 앙리 자이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 승리자라고 부른다. 이런 그가 와인 세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지극히 우연이었다. 1942년 그는 운명적으로 아내 막셀 후제(Marcel Rouget)를 만나게 된다. 포도 재배자의 딸이었던 그녀는 완벽주의자에 열정 주의자로 완벽하게 포도밭 일들을 해냈으며, 그녀의 열정이 앙리 자이에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한다. 또한 같은 마을에 사는 르네 엉젤(René Engel) 교수는 앙리 자이에에게 디종(Dijon) 대학에서 양조학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고 앙리 자이에는 그 이듬해인 1942년에 양조학 학위를 수여하게 되며 와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최고의 와인을 만들까? 그는 좋은 포도 재배자는 세심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배자들은 매년 다른 기후 조건에 맞서야만 한다. 그는 포도를 수확할 때 포도가 과숙하거나 미숙하지 않는 적절한 타이밍을 잘 맞춰야 피노 누아의 섬세함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포도 열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보통 7월경에 그린 하베스트(Vendange Vert; 아직 베레종으로 포도 껍질의 색이 바뀌기 전에 불필요한 포도를 잘라내어 남은 포도에 양분을 집중시키는 과정)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미 그의 포도원의 묘목 수령들이 나이가 많아 충분히 적게 열매를 맺는다고 말하며, 수확 후 봄철까지 이어지는 전지작업(프랑스어로 따이(Taille), 영어로는 프루닝(Pruning)이라고 하는)을 아주 짧게 하여 생산량을 조절한다고 한다. 수확 후에는 따블르 드 트리(Table de Tri : 포도 선별 작업대)를 설치하여 반드시 양조에 들어가기 전에 엄격히 포도를 선별한다고 한다. 거의 매년 15~20% 정도 걸러낸다. 

 

 

[특별한 양조 방법은?]

앙리 자이에는 물론 잔가지가 완전히 익었을 때 포도 열매와 잔가지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분리하여 함께 양조를 진행한다. 

 

포도가 최대한 낮은 온도로 유지될 수 있게 아침 일찍 수확을 시작한다. 이렇게 낮은 온도로 유지하면 발효가 천천히 진행되며 아로마가 풍성한 와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부르고뉴에서는 발효 직전에 온도를 높여 피노 누아 품종이 갖고 있는 탄닌과 안토시아닌을 최대한으로 추출하는데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라고 볼 수 있는 저온 침용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는 피노 누아 본연의 특징을 최대한 표현해야 한다며 시라(Syrah) 같은 느낌을 나타내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그는 빈티지에 상관없이 100% 새 오크 통을 사용하여 숙성한다. 항상 트롱세(Tronçais) 숲에서 자란 오크 나무만을 사용하며, 오크 통 선별 또한 엄격하게 진행한다. 매번 직접 코로 오크 향을 맡아 품질을 확인하고 선택한다. 토스트 수준이 높아 탄듯한 풍미가 많이 나는 것은 배제하고 중간 정도로 구운 오크만을 사용해 과일 풍미가 가려지지 않게 한다.

 

 

[요즘 신대륙 와인을 비롯한 현대 와인 스타일에 대한 의견은?]

앙리 자이에는 젊은 와인 메이커와 그들이 만든 와인에 대해 서로 테이스팅 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와인이 너무 농축되면 될수록 와인의 떼루아의 특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염려한다. 그는 덧붙여 피노 누아의 특징과 그 토양의 특징을 동시에 잘 간직한 와인, 더 나아가 단순하게 술이 아니라 마시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설명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슬슬 그와 작별을 고할 때가 찾아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 그가 말한 대로 포도밭을 경작하고 와인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와인을 만들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1년이든 10년을 기다리든 그의 와인을 꼭 내가 수입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KakaoTalk_20201028_161135089.jpg

 [경매에서 낙찰된 앙리 자이에 와인을 들고 있는 엠마뉘엘 후제(credit: Vinocus)]

 


 

안타깝게도 이미 고인이 되어 앙리 자이에의 와인은 수입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정신과 철학을 오롯이 물려받은 조카, 엠마뉘엘 후제(Emmanuel Rouget) 와인을 수입하여 유통하고 있으니 운이 굉장히 좋다고 볼 수 있다.

 

‘자이에 뒤에 자이에는 없다.’라고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타다시가 언급한 말이 생각난다. 물론이다. 자이에는 자이에, 후제는 후제이다. 하지만 앙리 자이에가 후제에게 전승한 것은 양조기법뿐만이 아니었고 소박함과 와인 앞에 겸손한 지혜로움을 남겼고 이는 엠마뉘엘 후제의 와인을 통해 더욱 빛날 것이고 와인을 좋아하는 모든 애호가에게 이러한 정신은 길이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어느 잡지에 앙리 자이에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이미 그는 와인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와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앙리 자이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그에게 꼭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로마네 꽁띠를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왜일까?

 

 

KakaoTalk_20200826_130546475.jpg

 ​[비노쿠스가 수입하는 엠마뉘엘 후제 와인(credit: Vinocus)]

 


  • 등록된 내용이 없습니다.
[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이전페이지
1
2
3
다음페이지
Copyright(c)2020 VINOCUS All rights reserved.